한국의 복지
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본문
장애인 탈시설이 대두된 시기
1990년 대 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재활모델에서 사회모델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재활모델은 장애가 당사자의 문제여서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 인식했다. 재활모델과 유사한 모델은 의료모델로서 장애를 치료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의료모델, 재활모델 모두 장애 원인은 당사자에게 있으며 스스로 치료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어서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나 지원은 멀찍한 곳에 있었다. 최소한의 지원이 있을 뿐이었다. 반면 사회모델에서의 장애는 사회와 국가의 문제이고 책임이므로 사회와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전환적 개념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의 생활
사회모델이 복지계로 스며든 1990년 대 초, 그 무렵이었다. 빨간 내복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것은. (모든 시설을 가 보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복지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금은 미미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비용 절감의 이유에서였다. 같은 옷을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수십 벌, 수백 벌 구입함으로써 비용을 최소화했다. 두 번째 이유는 몇 명의 직원들이 수 십 명 되는 장애인들의 의복을 개별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시간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장애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개별화하지 못한 인식에서였다. 장애인들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고 해야 맞겠다. 예산에 따라 시설이 운영되던 때였으니.
생각해 보라,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을, 한 방의 모두가 빨간 내복을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을, 6시면 일제히 기상해서 비좁은 화장실과 세면실을 사용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빨간 내복의 그들을. 그 옷들은 한꺼번에 세탁이 되어 대충 사이즈에 맞게 지급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옷이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겨 놓기도 했다.
빨간 내복과 함께 따라 나온 것은 머리모양이었다. 수십, 수백 명의 장애인 모두 짧은 커트머리! 빨간 내복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같은 이유였다. 미용실을 갈 수 있는 비용도 부족했고 한, 두 사람씩 지역에 있는 미용실에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관리(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런 단어조차 불편하다)가 편한 이유도 하나 더할 수 있겠다. 이 또한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은 일이었다. 주 1회 혹은 월 1회 미용사들이 시설로 봉사활동을 왔고 때로는 미용학원의 수습생들이 오기도 했다. 한 공간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종일 머리를 잘라야 했는데 염색이나 펌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찍어내듯 동일한 머리모양의 한 무리가 의자에서 일어나면 다음 순서의 무리가 의자에 앉았다.
대부분의 시설들이 하루일과표를 붙여놓았는데 보편적으로 6시 기상, 20시 취침이었다. 이 모든 것이 슬픈 일관성이었고 통일성이었다. 시설에 살기 위해서는 ‘일관성, 통일성’의 규율에 철저히 적응해야 했다. 우리는 그것을 요구하는 제공자(운영자, 직원)였고 관리자였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장애인의 삶이 자유로운 시설운영이 불가능한 시대였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해도 누군가 인식조차 그래야만 했었냐고 묻는다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장애인거주시설의 변화와 실제
지금은 어떤가. 옷은 알록달록 바뀌었고 머리모양도 다양해졌다. 지원금액도 1990년대 초에 비하면 수 십 배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빨간 내복 현상이 존재한다. 요동치듯 사회모델이 밀려왔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복지현장은 사회모델 적용이 일반화되지 않고 있고 30년 전의 것들이 존재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한 공간에서 다수(10명 이상) 생활한다. 생애 마디마디 중요한 결정은 보호자나 제공자가 하는 경우도 많다. 비장애인과 같은 생활환경 속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삶이 안전하지 않다고 결정해 버리는 정부와 제공자, 보호자들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좋은 사회였다면, 정의로운 국가였다면 그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었어야 했다. 모든 사람의 자유는 숨을 쉬는 일처럼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그 근간에서 장애인들의 자유와 선택이 시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