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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지
시범평가와 첫 평가 사회복지사업법 제43조는 사회복지기관 의무 평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각 영역별 시범평가를 할 무렵이었다. 우리 기관에 대한 시범평가를 해 보자는 연락이 왔다. 기관의 수준이 어떤지,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은 많이 하는데 체계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일은 많이 하는데’는 평가자의 입장에서 위로 겸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체계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체계라고 하는 것이 매뉴얼도 없어서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평가제도라도 도입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범평가가 끝나고 1999년 첫 평가가 이루어졌다. 체계는 잡히지 않았을지라도 최선을 다해 자료를 준..
90년대 사회복지시설의 직원 배치 1997년, 사회복지학과를 갓 졸업한 그녀가 생활재활교사로 입사했다. 스물두 살의 어린 사회복지사였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외출을 한 후 저녁에는 집인 양 다시 시설로 돌아왔다. 당시 시설에 지원되는 인력은 간접서비스 인력과 직접서비스 인력으로, 원장, 국장,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취사원, 위생원 등 간접인력을 제외하면 중증장애인을 케어하는 인력은 7,8명에 불과했다. 장애인들은 70여 명에 가까웠고 기록해야 할 서류는 늘 산더미여서 1, 2명의 종사자가 10명의 장애인을 12시간 이상 돌봐야 했다. 그러니 케어와 기록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아예 24시간 근로인력, 낮 근무 전담인력으로 근무조를 꾸려야 했다. 24시간 근로 조에 속해있던 그녀는 성격도 좋..
안전한 일자리를 위한 정책 최근 여기저기서 사업성 일을 권해왔다. 복지 외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제안을 받으면서 솔깃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데 권유자 중 정년을 앞둔 이가 절대 적이 없으면 안 된다며 일을 벌이더라도 그곳에 있으면서 하라고 말을 바꿨다. 그 역시 웃고 말았지만 일과 소속이 주는 안정감, 삶의 질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누가 보면 지나치다고 할 만큼 내가 장애인 일자리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장애인 일자리 문제는 층층이 쌓여가고 가고 있다. ‘공공일자리’란 이름으로 일의 개념을 흩트려 놓더니 이제 지자체들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지원조례안’을 우후죽순 발의하고 있다. 겉으로는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좀 더..
심신 미약과 사람 김현경의 새로운 글쓰기 장르인 ‘사람, 장소, 환대’를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를 지나 1장에는 ‘사람의 개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태아... 노예... 군인... 사형수... 자기 결정권이 없거나, 누군가의 종으로 팔리거나,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거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거나 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하며,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태아는 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노예는 태아와 같고(투아레그 Tuareg) 사회적으로 죽은 자(패터슨)이다. 현대전에서 병사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라고 저자..
심신 미약과 범죄 앞 선 글에서 정신장애인요양원 ‘그녀’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들을 회상하면서 가끔씩 들었던 욕설, 오래전 잡혔던 머리채는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미하게나마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기억이 희미해진 데는 그녀들의 해맑은 망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밥벌이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는 각오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하는 범죄 뉴스에는 심히 불편하고 우려스럽다. 2015년 살해한 아내의 시신을 시화호에 버렸던 김 00은 이틀 동안 잠을 못 잤다는 심신 미약을 주장하며 왜 범행을 했는지 묻는 기자에게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2016년에 수락산에서 여성 등산객을 살해한 김 00도 열흘 간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이와..
Y 씨가 시설 마당을 떠돌고 있다. 그녀가 떠돌 수 있는 세계의 전부. 아이 이름을 부르며 해지기 전에 가야 한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울다시피 하는 목소리가 다급하다. 가끔은 왜 나를 여기에 가둬두느냐고 힘없는 목소리를 한껏 높여 화를 내기도 한다. 검버섯,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는 아이에 대한 근심뿐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피해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삶도 인생도 자기 이름마저 잃고도 놓지 못한 단 하나, 아이는 이곳에서도 그녀를 살게 하는 이유이다. 하루를, 매일을 그렇게 아이만을 기억하다 해가 지면 요양실로 스며든다. 가끔 궁금하다. 그녀가 애타게 기억하던 그 아이는 엄마를 기억할까. J 씨는 아직 젊은 나에게 이모 같은 존재였다. 나보다 스무 살쯤 많았던 J 씨는 전편에서, 또 다른 매거진에서 ..
시설신고제의 도입 배경 1970년 처음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 제22조는 사회복지시설 설치·운영주체로 ①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②관할 도지사의 승인을 얻은 시·군 ③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은 사회복지법인으로 정했다. 1983년 일부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서는 비영리법인을 추가하였고 1992년 전부 개정을 통하여 ‘허가를 받는 경우’에는 사회복지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시·도지사에서 시장·구청장·군수로 허가권자를 변경하였다. 1997년 사회복지사업법은 개인도 사회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허가제를 신고제로 전면 개정하였다. 또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시설을 사회복지법인 또는 비영리법인에게 위탁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위·수탁제도를 처음 도입하였..
복지시설에 지원되는 정부보조금은 종사자 인건비, 이용 장애인 수에 비례한 운영비로 나뉘는데 장애인 수가 줄면 운영비만 조금 줄어들 뿐이어서 운영자들은 기관 유형이나 서비스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물론 기관 유형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 역시 같은 법인 내 거주시설에서 근무하면서 성인 장애인에게 직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고 누가 강요한 적도 없었으며, 주무관청에서도 성인에 맞는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고 유도하지 않았다. 매주 같은 일과표를 짜놓고 노래방, 산책, 볼링, 그림 그리기, 은행 가기, 마트이용하기 등 직업과 관련 없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마다 받는 복지부 평가에서는 최우수 시설로 선정되었다. 도대체 뭘 잘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
길 잃은 장애인 서비스, 정책, 복지시설 나는 장애인 직업재활 훈련과 고용 기능을 하는 직업재활시설을 운영하면서 성인이 되어도 일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외에도 다양한 복지 기관들이 있고 그 기관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일부 직업훈련을 받기도 하지만 기관 유형, 기능에 따라 성인 장애인임에도 직업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특히 생활, 여가프로그램 위주의 기능을 하고 있는 거주시설과 복지관,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멀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지난하고 결국 직업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는 종사자들의 인식에 따라 서비스도 달라지기 때문에 그들의 복지 마인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인 장..
정체성을 잃은 법인과 고용노동부 장애인복지를 한다는 것은 장애인의 삶에 개입하는 일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가정이 비장애인 가정과 동등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잘못된 정책에는 쓴소리를 내야 한다. 2008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장애인 직업훈련시설을 없앴을 때, 2011년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 제정으로 복지시설을 기업으로 만들었을 때, 훈련과 전이보다는 수익 위주의 지도점검을 할 때마다 이건 아니라고, 이렇게 하면 결국 장애인들에게 불이익만 돌아갈 뿐이라고, 건의하고 문제 제기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고용부담금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사회복지법인도 부담해야 한다. 요즈음 사회복지법인의 규모가 대형화된 반면 수익사업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