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복지

장애인 거주시설의 시작과 인권 침해 본문

카테고리 없음

장애인 거주시설의 시작과 인권 침해

JI SANG 2023. 11. 18. 10:44

장애인 거주시설의 시작

거주시설은 왜 생겼을까.

제러미 벤담은 사회적 약자와 마주쳤을 때 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동정심이라는 고통이, 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혐오감이라는 고통이 생기므로 그들을 구빈원으로 격리해야 한다고 공리주의를 강조했다. 세상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갖가지 형태의 격리는 그때부터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거주시설은 1910년 경성고아원, 1911년 제생원이 시작이다. 당시에는 아동, 장애인, 노인 등을 함께 보호했다. 1948년 중앙각심학원이 정신박약아(현재 발달장애인)를 보호한 최초의 장애인거주시설이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1956년 장애 종류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설치하기 시작한 시설은 1970년대에 들어서 장애인수용시설로 통일하였다. 명칭도 수용시설, 요양시설, 재활시설, 생활시설, 거주시설 등으로 변화하였는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 패러다임 변화를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명칭의 변화는 시설의 변화, 장애인 인권의 변화를 가져왔을까? 생활시설의 생활과 거주시설의 거주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생활을 생계를 유지하여 살아감, 일정한 조직체의 구성으로 매여 활동함으로, 거주를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물러 삶이라고 설명한다. 내포한 의미가 미세하게 다르다. 무엇보다 시설은 집과 같은 기능만 하되 여타의 생활은 모두 시설 밖에서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만큼 장애인의 인권 의식을 높이는 현장의 노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설의 형태를 벗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설에서의 삶과 집에서의 삶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 침해의 대표적인 예

2005년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에서 교직원들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 성폭행, 보조금횡령 등의 사건은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복지 현장은 한바탕 태풍이 몰아친 듯 어수선했다. 장애인을 포함한 시민들로 구성된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는 관할 구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사건은 공지영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된 후 다시 쟁점화가 되었고 광주광역시는 2012, 결국 학교와 시설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나는 그 당시 같은 지역, 다른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인화학교의 학생들이 거주하던 시설 인화원과도 교류가 오갔는데 부끄럽게도 나를 포함한 복지현장은 침묵했다. 동종 시설에 대한 충격과 염려가 뒤섞인 혼란의 침묵이었다. 그 무슨 말로도 당시의 침묵을 합리화할 수 없으며 대학원 수업시간, 당신들은 왜 침묵하느냐고 당신들 시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남의 일이냐는 모 교수의 비난을 들어 마땅했다.

시설에서 행한 직접적인 폭행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같은 법인 내 학교에서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혹 몰랐다 해도 장애인들의 안전한 숙식과 질적 보호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시설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인화원을 폐쇄하면서 그곳의 장애인들은 또 다른 시설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주했던 시설은 또 문제가 발생했고 운영법인이 바뀌는 아이러니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가해자들과 직원들은 모두 흩어졌지만 그 사건은 여전히 현장 사람들의 단단한 사슬처럼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물론 모든 시설이 다 이렇다고 보기엔 어렵다. 반대로 모든 시설이 그렇지 않다,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다른 사례를 보자.

[S 씨가 어느 날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이 근처를 뒤지다시피 S 씨를 찾아다니다가 식당에서 나오는 S 씨를 발견했다. 가게에 들어가 보니 주인은 주인대로 황당한 상황이었다. 맥주 두병에 식사를 한 S 씨가 돈도 지불하지 않고 유유히 나가버린 것이다.]

1) S 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시설을 빠져나온다.(어쩌면 술을 마시고 싶었을 것이고 직원에게 말했다면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혹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맥주 두 병을 시켜 기분 좋게, 천천히(누구의 재촉도 받지 않고) 병을 비운 후 나온다.(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수 있지만 일단 현금도, 카드도, 네이버, 삼성, 카카오 같은 페이도 없다)

3) 유유히 문을 밀고 나가는 S 씨를 보며 주인은 어이가 없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순간, 직원이 들어온다.

4) 몇 번씩 죄송하다고 말하며 값을 치르고 나온 직원은 S 씨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이런 일은 시설에서 살지 않는다면, 비장애인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인화학교 즉, 도가니와 같은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다시는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도 가볍거나 작거나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섬세한 마음으로 살펴봐야 한다. 여전히 시설이 존치하고 있고 인화학교를 겪은 그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으므로.